올겨울의 정선엔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12월부터 시작된 눈은 연일 몰아치는 한파로 꽁꽁 얼었는데
그 위에 내리고 또 내려,
사방팔방 어디를 보아도 끝간 데 없는 설원이 되었다.
온 산과 들이 눈에 파묻혀 새벽이면 고라니들이 먹이찾아 마을로 내려오니
집집마다 개들의 짖는 소리 요란하고,
두 줄기 길만 치우고 쌓인 눈이 그대로인 마당을 가로지른
짐승들의 발자욱이 어지럽다.
날이 추울수록 겨울의 하늘은 맑디맑아 유리알처럼 푸르고
덩달아 아우라지강물도 바닥의 모래를 헤일 수 있도록 맑다.
겨울이란 추워야 겨울이다.
우리네 어릴 적의 겨울은 춥기도 추워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들러붙기도 하였고,
자고 나면 방에서도 꽁꽁 얼던 자릿끼를 이제는 어느 누가 기억하겠는지...
장성하고 맞이하는 겨울은 따뜻하기만 하여 지내기는 좋다마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기만 한데,
금년의 겨울은 겨울답게 춥다.
닷새 만의 장날이 돌아와도 예년과 달리 추운 겨울 속의 장마당은
좌판이라고는 벌이지 않아 썰렁하기만 하고,
겨울나그네되어 찾은 길손 몇이 기웃하고는 아우라지를 찾는 길을 묻는다.
얼음장 사이로 흐르는 물을 따라 청둥오리는 노닐고
간혹 천렵을 나온 장정들이 아스라이 보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른다.
한낮이 지나 찾은 아우라지에는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섶다리가 놓였다.
생솔가지 툭툭 꺽어 얼기설기 엮은 섶다리엔 붉은 흙을 덮어
싱그러운 흙냄새와 함께 솔향 또한 그윽하다.
아우라지에서 만나는 두 갈래 물줄기는 송천과 골지천이라
골지천은 고요하고 물살거센 송천은 소리낸다.
아무리 물살이 세다 하여도 금년의 추위는 견딜 수 없음이라 송천은 얼어
그 위에 눈은 쌓이고 밑으로는 물이 흐르니 얼음은 두꺼워만 진다.
예년과 달리 섶다리도 중간에 끊어 이 얼음 위로 사람이 내릴 수 있게 하였기에
커다란 얼음장 위로 아이들은 조심조심 올라 즐거워하고,
섶다리 위에 새로이 설치한 출렁다리가 개통을 기다린다.
어스름이 짙어진 구절리엔 하루의 운행을 마친 레일바이크들이 나란히 쉬고 있고
작은 풍경열차 또한 레일바이크들의 사이에서 고요하다.
오래 전 탄을 캐던 산에는 그저 보이느니 푸르른 소나무와
하얗게 쌓인 눈과 눈...
설국이다.
농사를 끝낸 가을부터 산촌에는 집집마다 김장을 하고 메주를 띄우고는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다.
이 때를 기다려 평소 모이지 못 하던 모임들이 하나둘 시작되니
대동계를 비롯하여 반상회다 무어다 연일 모임이 부산하다.
이장을 새로 뽑는 날도 있고 경로당의 노인회장도 새로 뽑는다.
또한 반장이며 이러저러한 기구들을 이끄는 이들도 바뀐다.
동네 모든 이들이 참석하는 모임에 술이 빠지겠으며
메밀전병이 없겠는가...
마을회관은 연일 북적이고 기름냄새 고소하다.
1월도 다 지나가고 이런저런 모임도 끝나 다시금 찾은 정적 속에서
집집마다 또 다시 분주하여지는 설이 온다.
멀리 떠나보낸 자손들이 찾아오는 설이 가까워오매
노인들은 감주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다.
산촌의 집집마다에는 아들딸들이며 손주들의 사진이 벽 가득 붙어있다.
만두 하나 빚고 사진 한번 치어다보며 행여 잊을세라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할머님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산촌의 노인들에게 설은
설레임이다.
* 이 아름다운 詩는 다음까페 " 그대가 머문자리"에서 2013년 겨울 "정선나그네"님의 아름다운 시를 퍼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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