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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이 있는 작은동네 羅田

일상이야기

by 養正 2015. 7. 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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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진한 향이 사그러진다 싶더니 찔레꽃이 만발한다.

 

하얀 찔레꽃을 따라 벌은 잉잉거리고 햇살은 따끈하니

어느 새 오디도 흐드러지게 열렸다.

 

애시당초 동네를 불러 羅田이라 함은 오래 전 이 고장엔 뽕나무가 많아

질좋은 누에가 생산되어 비단밭이라 불렀으니

 

지금도 여기저기 숲 속엔 자생하는 뽕나무가 많아 오디는 지천인데

아직 까맣게 익지는 않아 며칠 더 기다려야겠다.

 

아침의 저온현상도 하루하루 달라져서 예년의 기온을 회복하고

한낮의 기온은 높아 햇볕에 나서면 제법 따가우니

 

진풍이와 진덕이도 그늘을 찾아 늘어지게 잠을 자고

뻐꾸기는 시도때도 없이 이 산 저 산에서 뻑국뻑국 울어댄다.

 

뻐꾸기가 울면 심사 공연히 야릇하여 아득한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아

한 동안은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나

 

다행히 오래지 않아 그치니 이내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음이라...

 

 

아직도 혼자 오붓하게 즐기는 두릅밭엔 갈 적마다 한 웅큼의 수확은 여전하고

간혹 곱게 핀 붓꽃의 보랏빛자태는 수수하면서도 고고하다.

 

기온이 올라가며 텃밭의 옥수수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 크고

이런저런 야채도 풍성하니 끼마다 식탁도 풍성하다.

 

 

집에서 걸어 십 분이면 작은 동네 나전이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돌아보는 작은 동네는 역원없는 나전역을 중심으로

면사무소와 복지회관의 큰 건물이 왼 편에 자리잡고

 

오른 편으로는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의 시장이 들어선

그저 길기만 한 건물이 농협까지 줄지어 있으며

 

그 끝에 또 작은 버스터미널이 있어 꼬마기차가 다니는 철도굴다리를 지나

정선도 가고 진부도 가고

 

서울 강릉도 간다.

 

그리고는 대부분은 산뜻하게 새로 지은 주택 사이로 옛날의 탄광사택들이

더러는 비어 지붕은 허물어졌는데

 

살림살이 보이는 집에서는 마당에 이러저러한 야채심어 살아가니,

 

아직도 숫자로 매겨지던 그 때의 홋수가

비 아니 맞는 처마 밑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동네라 하여도 시가지는 네모 반듯반듯하고 길은 넓은데

건물은 아직도 오륙십년 대의 모습이라

 

길 양 옆의 건물엔 의례 출입문 위로 간판을 달 수 있는 높다란 담이 지붕을 가리니

하나 밖에 없는 약방이며 자전거포 당구장의 간판이 문 위에 길게 걸렸다.

 

작은 동네로서는 의외라 하겠으니 그 옛날 축음기틀던 모습의 다방은

아직도 서너 곳이 문을 열어 손님은 있고

 

철물점도 세 곳이나 되고 미장원도 서넛 눈에 띈다.

 

산나물이며 약초를 파는 건강원도 두어 군데 있어 철따라 약초썰어 말리고

하나 뿐인 떡방앗간엔 유리달린 미닫이문이 드륵 소리내며 열린다.

 

작은 식당은 많이도 있어 제각각 유리문에  매직글씨로 "민물고기 있음"이라

작은 종이를 붙였는데

 

점심 때가 되어 여러 번 지나쳐도 드나는 이 보이지 않는다.

 

지방선거가 끝나 동네어귀마다 붙어있는 후보자들의 벽보는

몇년 전의 이야기인 듯 쳐다보는 이 없고

 

작년 가을 역 앞에서 노란 은행잎과 함께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으려니

장대들고 털어주던 역앞 개인택시기사는

 

지나는 자전거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동네에 하나 뿐인 의원은 연로한 원장의 와병으로 문을 닫은지 오래 되어

현관에는 우편물만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으며

 

그 앞 너른 공터에는 트럭에 싣고 다니는 만물상이 장날처럼 전을 펼쳤다.

 

작은 우체국 작은 소방서 작은 파출소 각 하나씩 있음이나

산골동네 무슨 일이나 있겠는지 그저 한가로운데

 

항골계곡 맑은 물이 농수로를 타고 동네 한 복판을 흐르니 논들도 많아

한 뼘 정도 자란 벼가 가지런하고

 

밭도 많아 드문드문 있는 집 사이로 감자밭이며 곤드레밭 옥수수밭이 볼 만하다.

 

그리고는 아우라지에서 흘러내리는 조양강이 방죽을 따라

언제나 물소리내며 여울지어 흐르니

 

나전 작은 동네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옛날엔 탄광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뻐꾸기가 운다.

 

 

* 다음까페  "그대가 머문자리" 에서 퍼온  정선나그네님의 아름다운 詩다

   70년대 대한광업소 나전탄광이 있을때 번성했던 나전과 현재 작은동네로 변모한 나전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나전역은 정선군 북평면에 위치한 꼬마열차가 다니는 정선선(민둥산역-여량역)의  무인 간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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