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장위동 근무할때다. 그 당시 장위동 국민은행 일대에 수석가게가 세군데나 있었다. 애석원 박호성사장님, 장위수석 양사장님, 그리고 한곳은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해 어느 봄날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장위수석에 들렀는데 막 청소가 되어 진열대로 올라가 간이 연출된 높이 약 40센티미터 크기의 파스텔톤 노란색과 연두색이 배합된 칼라에 돌 전체가 움푹움푹 패어진 자구리가 유리알 처럼 수마가 된 돌 한점을 보면서 일순간 나의 눈과 온몸에 전율이 세포 알알이 퍼지고 있었다.
바로 그날 양사장님과 그 일행들이 평창 진부 수항리 수항분교에 앞 오대천에서 탐석해온 전리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나는 전생에 애인이었던 숙암석을 처음 접하는 날이었다. 그때 보았던 그 돌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눈과 뇌리에 각인이 되어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숙암석이란 용어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수석잡지와 여러 수석 매체에서 숙암석을 접하면서 그당시 양사장님이 탐석해 온 돌이 현재의 숙암석 산지와 같고 칼라가 숙암석칼라와 동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여행중 가끔 이곳을 지나가면서 탐석을 했지만 처음 접한 숙암석에 대한 각인이 너무 강하여 숙암석 한점 탐석 하지 못하였다. 그후 정선 나전역 앞에 살고 계신 숙암석의 대가인 숙암님의 숙암돌을 접하면서 내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던 숙암석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일렁거리기 시작되었다.
2011. 6월 덕소 벗들을 꼬드겨 정선으로 탐석여행을 떠나면서 오대천 곳곳을 다녔지만 대부분 벗들은 이곳이 처녀 탐석지고 숙암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빈손이었고, 나만 오대천 하류 나전리 강변에서 연두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소나무가 그려진 천년송을 탐석했다.
이때부터 오석 바탕에 형광칼라가 들어간 숙암석의 포로가 되었고, 마치 병적일 정도로 숙암석에 완전히 빠져 들기 시작했으며, 노란색과 연두색이 들어간 숙암칼라가 직업상 날카로워진 눈매와 어지럽혀진 심상을 치유해 줄 것 이라는 확신을 가져 본다. 언제 이 병이 낳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아마 우스갯 소리지만 "숙암"이란 병 걸려 숙암돌을 줏다가 돌밭에서 죽고 싶다.
이글을 빌려 숙암석의 이해와 산지를 인도해 주신 숙암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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